[시의 초막에서 띄우는 詩]
두 다리로 걷다가 다리 하나를
잃어 버렸다
이제야
넓은들을
바라보았다
-최영록, <이제야> 전문
누가 초원의 집을 보았는가
푸른 초원속에 외다리로 뿌리를 내리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나무, 수많은 가지들을 하늘로 치켜올리며 평생을 붙박이로 살아가는 나무의 일생을 누가 가엾다 할 것인가!
참 몰랐다 내가 어느 길로 한 세상을 가고 있는지
삼백예순다섯 날 날마다 나 없이 나를 떠나보내면서
다리 아픈 비명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장대 꽂힌 못 생각나무를
오늘도 무연히 바라보며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일까
잃어버린 내가 나인지 알 수 없다
까실까실 바람결에 익어가는 보리알의 속살거림을 저 나무들은 이미 다 엿들었겠지
보리 깜부기 뽑아 입가에 까맣게 칠하며 낄낄거리던 그때의 조잘거림까지도,
하늘과 땅 경계가 사라졌다
청보리밭 빗질하는 언덕받이
보리 이삭 위에 새털바람
스르륵 스르륵 훑고지나 세상의 남루를 씻어낸다
네 머리 위에 푸른 바람이 핀다
바람 모서리 위 눈썹이 덩달아 푸르다
초록바람으로 세상을 본다
보리잎보다 더 푸르게 눈부셔
눈 촉촉하다
그 사람 눈망울 그리며
나 홀로 저 광막한 초원을 간다
울퉁불퉁한이랑이랑초원위에구름꽃하얗게흩뿌린다
헉헉숨막히는삼복더위내속의나와함께걸어가면길위
에길없이도절로간다산바위풀막도허위넘는바람새길
내리막큰자리없는절집홀로남아벼랑끝에천년세월이
매달고있다바람이머리채를풀어놓고간애틋한풀꽃자
리누군가버리고간속내들이한조금영혼의빛으로여울
진다하늘문열리고초원의문열리고연녹색풀물이광야
로빛나는길고짧은하루가생생멀어져가고있다칠월에
지평선 너머 멀리 구석구석까지
삶의 이정표를 남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길 따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이곳 햇살 맑은 바람 하늘 공기 자작나무숲 새소리 이름 모를 낮은 풀꽃 모든 것이 함께 나 살아 있어 더욱 아름답다 오늘의 끝없는 여로 그 초원의 가장자리 지평선 끄트머리를 뒤뚱거리며 가다
나는 어디론가
귀 바람에 불려 가고
그 바람 끝 어디쯤일까
이내 깔리는 무량한 초원의 빛깔
마음은 초록물이 뭉턱뭉턱 들어가고
또 다른 한 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들판 밝히는 등불 하나
허공에 걸어 놓고 있는
저 사람은
방랑자를 닮았다는데
나그네 끝내 보이지 않는다
저 들판의 너를
생각 없이 생각하다가
하늘인지 바다인지 초원인지
맞닿는 그곳을 본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기억 속 너 거기 초록바람 불고 있어
너울 너머 한 치 젖은 그림자 밟아 가면
가는 만큼 멀어지는 너와 나의 거리
마음 닿을 수 없는 무한천공
그 멀리에도 우리가 잠들 세상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이제 내게 남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것들 곁에서
돌아왔다가 돌아가는
내 마음의 둔덕 초원 한겨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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