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유별났던 폭염과 태풍을 잘도 견뎌 낸 수수가 고개를 숙이고 갈볕에 기도하며 몸을 말리고 있다.
오미자 머루 다래 등 자연이 선물한 온갖 열매들이 조롱조롱 가을을 구워내리고,
철이른 억새는 목이 마르지 않아도 수면위로 한사코 고개를 내민다.
홀로 쓸쓸했을 밤마다 뿌렸을 싸락눈처럼, 교태부리며 울긋불긋 털갈이하고 있는 한 보퉁이 나뭇잎들을 만난다.
누가 우리를 서 있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거꾸로 매달려 끙끙 신음 중이거나
아무렇게나 파괴해버린 자연에 처절하게 종속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9월의 아침] 폴 사바 (1914)
물안개 사이로 슬몃슬몃 떠오르는 꿈속의 여인이 바로 이 그림속의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습지도 건기엔 사막이 된다.
땅이 깨어진다.
눈물이 매마른 가슴에는 생명의 윤기가 대신 샘솟는 당신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수 억년 동안 흐르고 흘러 온 강줄기,
교교히 깔리는 겸손은 낮은 곳으로 몸을 갈앉히면서도 강바닥 사이사이 엎드려 있는 자갈들을 포근히 어루만지며 흐른다.
그리고는 마침내 뜨거운 조약돌 하나를 만난다.
뜨거울수록 커지는 그 조약돌의 탯자리는 더 캄캄하고 깊어진다.
행여 길을 잃지 않도록 언덕에서 하늘거리며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코스모스 꽃다지
[<詩의 초막>에서의 가을 단상]
밤하늘을 아련히 올려다봅니다. 십 수년 이 풍진세월을 나그네로 떠돌며 삶에 쫓겨 허둥대며 살아가다 보니 하늘의 별들을 바라본 지도 한참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선지 처음에는 별들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상의 대기 오염과 공해로 인해 별들의 눈동자가 흐려진 탓일까요?
아니면 제 마음의 창, 별을 바라보는 마음눈이 그만큼 때 묻고 흐려진 탓이었을까요.
그래서 틈나는 대로 마음을 비우고 눈을 씻고 하니 조금씩 별들이 나타나고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어느새 제 몸과 마음은 홍진에 물들어 그 본연의 빛깔과 자태를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덕지덕지 때 묻은 눈으로 바라보니 별들이 그 맑고 밝은 눈빛을 마음을 쉬 열어줄 수 있었겠습니까.
어림없는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틈틈이 명상하며 맑은 마음을 되찾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더니 비로소 그 맑은 별의 눈동자 마음거울이 이 새 가을에 화안하게 미소 지으며 다가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풀벌레 울음 사이로 언뜻언뜻 얼비치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나직나직 훔쳐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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