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멀리 떠나 보내고]
1
좀처럼 전화질 않던 귀차니스트
친구 녀석의 번호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단짝 친구 서누가 세상을 버렸다며
그래 얼마나 깊은 상처의 끝 길 홀로 걸어갔을까
무심했던 옛 얼굴들이 아프게 떠오른다
어느 새 내 나이 어릴 적
까마득하던 부모님의 그 자리에 와 있다
만나고 헤어지고 기다리며 우리 살아가는 동안
빛바랜 추억으로 떠오르는 거기
함박꽃으로 편안하게 정 많았던 서누
아무도 모르는 허망한 꽃잎들이 지고 있다
2
해넘이 주춤거리는 강물위에 그를 뿌렸다
한 점 노을자락과 바람으로 실려
알 수 없는 먼 길 떠나가는 그대
모두 가야 하는 길 먼저 갔을 뿐이라고
남은 우리 서로의 안부를 다짐하면서
제각기 구부러진 긴 강뚝을 떠나갔다
천근 마음 무거워진 여름날의 하루가
석남꽃 꽃노을로 타고 있었다
나 죽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저렇게 눈부신 꽃은 피어날 것인가
세월이 비켜 간 자리마다 계절이 타는 무심한 강이 흐르고
그대 찾아가는 길 아직 남아 있지 않을까
가만히 불러본다
아무런 대답 들리지 않는 그곳
빈 강나루 물메아리 물메아리만
영영 멀어 희미해져 갈 뿐
그렇게 잊고 잊히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이 여름 물망초 다시 피어 오른다
해넘이의 새들도 친구를 배웅하며 서둘러 보금자리를 끼룩끼룩 찾아 떠나고
떠나간 친구는 흐르는 강물줄기를 차마 따라가지 못하고, 무심했던 우리들이 돌아가는 어둔 길을 멀리멀리 밝혀주고 있었다
출처 : choigoya
글쓴이 : 최고야 원글보기
메모 :
'최고야· 최영록 詩人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또한 내 마음이려니 -최영록- (0) | 2012.11.06 |
---|---|
[스크랩] 해질녘 가슴 미어지는 강물 같은 사랑 (0) | 2012.11.06 |
[스크랩] 이제야 (0) | 2012.11.06 |
[스크랩] 끊어져버린 쇠를 따뜻하게 녹인 玉이 있었으니, 바로 송강 鄭 澈의 여인 眞玉이다. (0) | 2012.11.06 |
[스크랩] 이윽고 꽃 진 자리에 그 향기 더 붉다 (0) | 2012.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