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설악 푸른 산길을 걸어서 오랫만에 허위단심 백담 숲길을 걸었습니다. 높고 짙푸른 갈매빛 산마루를 여릿여릿 떠가는 구름이 어서 오라, 오너라 손짓하며 반가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홍진에 묻혀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솔바람도 솔솔 불어와 제 때묻은 몸과 마음을 씻어주고 조용조용 위무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만의 정신의 고향으로의 고요하고 청징한 귀향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편의 詩가 떠올랐습니다.
십리도 반나절쯤 갈만도 하니
구름속 오솔길이 이리도 그윽할 줄이야
시냇물 따라가노니 물도 다한 곳
꽃도 없는데 숲에서 풍겨오는 아, 산의 향기여
만해의 漢詩 한 편 입니다.
참으로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하는 맑은 詩 아닙니까?
이 산 저 산 산사를 찾아 구름처럼 떠도는 만해에게 산은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청정도량이었겠지요.
사실 우리의 몸은 어떻습니까?
온갖 세속 도시의 환경오염으로 나날이 병들고 시들어 가는 모습이 아닌가요. 또 마음은요?
일찌기 서옹선사와 목월이 '청산은 나를 보고' '산이 날 에워싸고' 라고 노래 한 것처럼 온갖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감옥에 갇혀 신음하며 메마르고 여위어가는 그런 보기 흉흉한 모습은 아닌지요. 그만큼 심신이 고달프게 피폐해만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선지 어느 작달막하고 이름 난 노시인도 위 두 선각자의 싯구를 인용하여 마치 자기 詩처럼 '청산은 나를 보고' 하는 '00장터'라는 詩를 읊었나 봅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산을 찾고, 좋은 詩를 읽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푸른 산 천근고요와 절대고독이 숨죽이는 숲의 정기를 맡으며 심신을 씻고 또 좋은 詩를 읽으면서 새로운 우주 에너지, 자연과 생명의 숨결과 혼결을 정가로이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속세의 온갖 무거운 욕망과 부질없는 삶의 짐짝들을 산마루 고사목 귀떨어진 가지에 걸쳐놓고, 가부좌 틀고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과 맑은 바람으로 우리 살과 뼈와 피를 맑게 말리며 새로운 오늘과 내일을 힘내어 살아가야겠다는 그 말씀입니다.
[(사)한국시인문화연구소/소장 최영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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