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 최영록 詩人님

[스크랩] 선생님! 단지 산수유 몇 송이 피었을 뿐입니다

° 키키 ♤ 2012. 11. 6. 03:15

  그 곳에도 키작은 찔레는 큰 나무들이 싹을 내밀기 전에 잎새를 서둘러 피우고 있겠지요. 골안개처럼 푸릇푸릇 피어나는 들꽃만이 이 계절을 반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해의 결실을 바라는 씨앗이 가득한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산비탈 뙈기밭으로 향하는 아낙네들의 발걸음에도 햇살 따가운 줄 모르는 즐거움이 가득 배어 있으니 말입니다.

  힘겨운 시간이면 삶의 행간에 몰래 접어두었던 작은 꿈처럼 늦봄의 고단한 땀의 열매가 사리처럼 굳어져야 비로소 제 빛깔이 나는 것을 계절도 꽃도 사람도 모두 알고 있는가 봅니다.

  일전 모 일간지에 '이번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의 스승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스승을 찾아뵙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피킷을 어느 초등학교 정문에 세워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새봄의 초록빛 향기와 함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구태여 위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번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그동안 본의아니게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스승님을 한 번 찾아뵙고 지금 내가 현재의 위치에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인생항로에 커다란 돛대와 삿대의 올곧은 씀씀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제지간의 진한 만남의 장이 한바탕 질펀하게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이번 스승의 날에도 지리산 자락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는 골 깊고 물 맑은 언덕에 누워 계시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을 자식들과 함께 찾아 뵈는 의미있는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그곳에는 목련,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산벚꽃, 자줏빛각시붓꽃, 산수유 등 갖가지 나무 꽃들이 봄바람에 꽃잎을 날릴 무렵, 나무엔 새잎들이 돋기 시작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동안 나무 꽃들은 키 작은 풀들이 충분히 햇빛을 받아 풀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렸고 나뭇잎들은 벌레들과 흥건한 사랑을 나눌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겠지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는 '중학교에 가려면 책을 많이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함은 물론이고 자기의 생각이나 머리속에 있는 지식들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바르고 깊이있는 글을 쓰는 법도 터득해야 하는 법이다. 특히 일기를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써야 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둘이서 학교 뒷동산에 올라 소월과 영랑시를 번갈아가며 읊기도 하고 또 시제를 내어주시며 시를 지어보도록 지도해 주시기도 하셨던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운 그 선생님이 지금 제 곁에는 아니 계십니다.

  저의 어설픈 시 아닌 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초저녁 별들이 막 돋아나려는 늦은 시각까지 함께 고치고 다듬으면서 어린 시심에 불을 지펴주셨던 엄격하시면서도 너무나 자상하시고 심성이 고우셨던 보고픈 선생님!

  참 삶의 굴레를 이탈하지 않는 참된 길이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길, 항상 바른 길을 올곧게 가야 한다고 뜨거운 채찍으로 이끌어 주셨던 그런 선생님중의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과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른바 편지글로써 글쓰기 원격지도를 해주셨던, 지금 와 생각해보니 요즘 들불처럼 번져있는 원격화상교육이니 양방향 통신교육이니 하는 것을 저는 십 수년 전에 시도한 원격교육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평생을 서해의 절해고도와 산간벽지를 오가며 참스승의 길을 걸으셨던 선생님은 말년에 당신의 향리인 지리산 자락 구례 산수유마을 산골 초등학교로 부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노후를 보내시다가 지금은 폐교가 되어 온갖 넝쿨과 잡초로 뒤엉켜 진입로마져 분간하기 어려운 당신 이승에서의 마지막 학교가 되어버린 그 곳의 뒷산 낮으막한 등성이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말없이 누워 계십니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손에 잡힐 듯 은비늘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밤이면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모두가 떠나버린 잡초 우거진 운동장에 여릿여릿 호올로 내려오셔서 상념에 잠긴 발자국을 듬성듬성 소월의 산유화 가락에 실어 남겨 놓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해마다 5월과 기일이 있는 9월이면 찾는 선생님의 묘소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선생님과의 만남이 반갑기도 하고 가슴이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묘비를 어루만질 때마다 생전에 선생님과의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못한 못난 제자로서의 부끄럽고 송구스런 마음이 늘 앞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학교 뒷동산에서 어스름 이우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선생님과 저는 나중에 커서 꼭 소월과 영랑같은 멀수록 향기롭고 새벽 물안개속의 닫혔던 속마음이 열릴 때 퍼져나오는 은은하고 싱그런 영혼의 울림을 줄 수 있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손가락 걸며 굳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더 저물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가야 한다는 새들의 강박관념, 그 퍼덕이는 새들의 힘찬 날갯짓에서 삶의 희망과 몸부림을 읽어냅니다. 늦었지만 선생님과의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습니다.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과 스승님 살아계심에 항상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풍상세월을 살아가더라도 가끔 씩 찾아뵙는 여유로움이 무척이나 아쉬운 지금입니다.

 

*이글은 지난 2007년 4월 30일 (월요일) 조선일보 A30면 오피니언 [칼럼]란에 실린 내용임을 밝힙니다.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