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 최영록 詩人님

[스크랩] 사월의 끄트머리에서 못견디게 다시 그립습니다, 오늘 당신이

° 키키 ♤ 2013. 7. 15. 04:03

 

 

 

 

 

            요 근래 매주 금요일 저녁나절에 찾는 <詩의 초막>에 어느 사이 봄이 깊숙히 내려앉으면,

 

 

 

 

 초막 뒤 켠의 서너 평 작은 공간 <시인의 집>에서 고뇌하는 시간도 더불어 얼기설기 실타래로 길어지고,

 

 

 

 

   잠시 막힌 詩心을 맑히기 위해 산길로 들어서면 먼저 요며칠 봄비에 한껏 물오른  참나리가  어서오라 꽃술을 내밀며 반깁니다.

 

 

 

 

  詩는 한 단어 한 行, 한 聯에 천금의 무게를 담아서 써야 한다고 했던가.

  그리하여 詩語 하나, 점 하나에 몇 시간, 몇 나절, 며칠, 몇주를 고르고, 붙이고, 지우고, 다시 고쳐쓰기를 반복하는 詩쓰는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겨우내 북풍한설을 견뎌낸 고목의 부르튼 살갗을 비집고 청초한 꽃송이가 슬몃슬몃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자연의 경이로운 광경은 또 하나의 생경한 덤이고,

 

 

 

 

  그 팔팔한 노거수의 뒷태를 한 바퀴 돌아 산마루에 접어들면 꽉 막힌 가슴을 시원하고 정갈하게 씻어주는 물래방아와 교감하는 행운도 누리게 됩니다.

 

 

 

 

  더 깊숙한 산길로 들어서면 한 세기는 족히 넘겼을 법한 울창한 삼림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에,

아주 멀고도 오래 전에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발자국 두 줄기기가 여릿여릿 지나고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더러는 자동차 바퀴 자국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두 말 할 것도 없이 사람이 밟고 지나간 흔적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발자국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들이 디뎠던 흙자국만 하많은 세월 그대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발자국 도장을 보면서, 그대가 내 가슴에 너무나 깊게 찍은 화인(火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풀도 나지 않고 어찌 이리 오래 남아 있을까요?

  분명 불화살이지요. 아니, 이제는 불기운은 다 스러지고 기다랗게 흔적만 남은 오랜 비바람에도 씻기지 않고 깊숙히 각인되어 버린 후밋길입니다.

  하지만 그 후밋길은 날마다 다시 푸르름이 돋아나는 초원입니다.

  애초에 풀숲이었던 산등성이는 발길이 짓눌러 맨몸을 드러냈지만, 내 가슴 속에는 날이면 날마다 당신이 딛고 간 자국이 다북다북 새롭게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하여,

                                             잔인하다는 사월의 끄트머리에서

 

                                             오늘,

                                             유난히도 당신이 다시 그립습니다.

 

 

 

 

화인火印 발자국 하나

 

 

어느 날 초막을 떠나 산을 오르는데

 

계곡 따라 바람으로 오르는데

 

물소리 뒤에 두고 산을 오르는데

 

보이는 것은 나무뿐 산은 보이지 않네

 

누가 찍고 갔을까 발자국 하나

 

산은 가려 있어도 거기 있고

 

눈물은 보이지 않아도 나는 거기 있네

 

 

 

 

 

 

 

 

 

 

 

 

 

 

 

 

 

 

 

 

 

 

 

 

 

 

 

출처 : choigoya
글쓴이 : 최고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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