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호박전을 못 드신다.
고모부와 얽힌 슬픈 사연 때문이다
.
때는 한국 전쟁이 나기 직전인 1949년, 고모와 갓 결혼한 고모부는
남보다 정의감이 유난했던 것 같다.
무슨 정치 이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친일하며 으르렁대던 치들이 해방된 나라의 경찰과 행정을 독차지하는
꼴을 못 견뎌 했던 모양이다.
고모부는 친일 경찰의 과거 행적을 밝히는 격문을 썼다가
쫒기는 몸이 됐다.
나뭇짐 속에 달포를 숨어 다니다가 경찰에 잡혀 갔다.
그리고 며칠 뒤 피 칠갑이 돼서 돌아왔다.
"마침 처서 지난 울타리에 애호박이 퍼렇게 맺혔어..!"
고모는 그 가을날을 눈앞에서 보듯 선명하게 기억하셨다.
피투성이가 된 스물두 살 고모부는 애호박을 보고 아내에게 수줍게
말하더란다.
"호박전이 먹고 싶어.." 라고...
고모는 얼른 애호박을 따 동그랗게 썰고 밀가루를 바쁘게 개었다.
번철을 닦아 올리고 마른 솔가지를 꺽어 화덕에 불을 붙였다.
호박전이 하나 익을까 익을까 말까 하는 순간..
다시 낯선 경찰이 고모집에 들이닥쳤고 대청에 잠깐 누워 호박전을
부치는 고모을 바라보던 고모부는 또 한 번 잡히고 말았다.
고모는 끌려가는 고모부를 따라 동구 밖까지 호박전을 들고 따라갔더라 한다.
그러나 새신랑 입에 부친 호박전 한 점을 넣어 주지를 못했다.
그게 둘의 마지막이었다..
고모부는 한국 전쟁 발발 때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남하한 북한군이
감옥문을 열자 행방불명되었다.
그 뒤.. 60년이 흘렀다.
젊디 젊은 고모는 아이 하나 없이 홀로 천천히 늙어 갔다.
남편을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기다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가부장의 법도가 시퍼런 시댁 대문을 나설 수는 더더욱 없었다.
스물두 살 어린 새댁은 이제 여든여덟 할머니가 되었다.
가을은 해마다 오고 호박순은 해마다 말라 가고, 끝물 애호박도
해마다 주렁주렁 열린다.
그러나 바위솔이 늙어 가는 고모 댁 덩실한 기와집 안뜰엔 언제나 호박전이 없다.
60년이 넘게 흘러도 고모는 무심코 그걸 입속에 넣을 수 없다.
그날..
새신랑의 두렵고..
수줍고 어색하던 표정이 번번이 그 호박전을 가로막기 때문에..
(김서령) (지난주 도서관에서 김서령님이 쓴.. 애잔하고도 가슴 아픈 사연의 이 글을 읽고.. 여기에 옮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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