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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천상륙작전 62주년]`목총으로 싸우다` 인천상륙작전 전초전 영흥도전투

° 키키 ♤ 2012. 9. 17. 13:42

 

 

 

 

대한민국해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해군기동함대(701,702,704,513,301,307,309,310,313함)의

승조원들이 육상전투를 할 수 있는 육전대를 조직해 8.18일에 덕적도를 탈환하고, 8월20일 영흥도를 탈환하였으며,

영흥도 청년방위대와 함께 영흥도를 사수하였다.

8월24일부터 해군첩보부대를 투입하여 서울, 인천, 수원등 북한군장악지역에서 상륙에 필요한 정보등을 제공하였다.

9월13일 북한군은 대대급을 급파하여 다시 영흥도를 일시 점령하였으나 703함의 함포지원아래 육전대와 청년방위대는

필사적으로 영흥도를 사수하였다.

이 과정에 임병래 중위는 자살하고, 14명의 해군장병과 청년방위대가 전사했다. 

그리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다.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평양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첩보부대의 창설요원으로

건군 초기의 해군 정보업무 체제정립과 전력증가에 크게 기여하였다.
1950년 6. 25전쟁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특수공작대의 조장으로 선발되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인천, 서울지역으로 잠입, 정보를 수집해서 북한군의 상황과 군사기밀을 탐지해

아군 해군본부와 미군 사령부에 제공하여 인천상륙작전성공에 크게 기여했으나 상륙작전 개시 하루 전인

9월 14일 영흥도에서 활동 중인 인민군 1개대대의 공격에 맞서 대원들을 탈출시킨 뒤

포위당하자 인천상륙작전의 실패를 우려해 자결하였다.
 그 후 그의 전공을 기려 1계급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고 미국정부도 은성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출처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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