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를 맺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
1. 사 랑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변질되는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영적인 사랑이 잘 나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했지요(고전 13:4~7).
그러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속한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령의 열매의 ‘사랑’은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것으로,
고린도전서 ‘사랑’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랑이 임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2. 희 락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지금 내가 중심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모습이 바로 희락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를 여실히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은혜만 해도 항상 기뻐하기에 충분합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행복과 평안이 가득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항상 마음에 희락이 넘쳐야 하지요.
3. 화 평
화평이란 설령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이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지요.
우리가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화평을 깹니다.
즉 우상 앞에 절을 한다거나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않고 결혼식에 가지요.
이는 잠시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만들어 화평을 깨뜨린 결과를 낳고 맙니다.
다음은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때,
진리의 마음을 좇아 나갈 때 자신과도 화평을 이루지요.
이처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자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4.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애매히 욕을 받았을 때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지만
“하나님 말씀이니까 참아야지.” 하면서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버려나가지요.
다음은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가 내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
응답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참는 것입니다 .
5. 자 비
자비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임하면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죄하기보다는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처음부터 아셨지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습니다.
끝까지 그를 곁에 두시고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주셨지요.
이처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능히 용서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6. 양 선
양선(良善)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내 생각과 성품에 안 맞는 일에도 마음과 뜻을 모아 줍니다.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거나 인정받으려는 허영심도 없습니다.
누가 애매히 괴롭혀도 긍휼히 여기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섬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화평함을 이룹니다.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19~20) 말씀한 것처럼
양선의 마음은 분냄이 없는 마음이요, 거룩한 마음입니다.
7. 충 성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삯을 받은 만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넘치도록 했다면 충성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적인 충성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마음의 할례’를 말합니다.
즉 마음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하지요.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했는데,
이는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는 영적인 충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할 때
온 집에 충성했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즉 가정, 직장, 학교,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명자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 유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해져 있는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상대가 부딪혀 와도 혈기를 내거나 불편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해해 주지요.
그러니 많은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고 쉼을 얻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영혼들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는다는 뜻이지요.
천국에서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9. 절 제
절제는 마음에 임한 덕목들이 겉으로 드러날 때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 안에서 무엇이든 풍성한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요.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가장 적당한 선에서 절제를 합니다.
이처럼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아름답게 조절해 줍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