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봉· 한문용 詩人님

[스크랩] 입동

° 키키 ♤ 2014. 2. 27. 10:37
입동(1)   늘봉 / 한문용
귀뚜라미 소리가 끊겼다.
신작로 옆집 
감나무에 달랑 달린 감 한 방울이 
몹시 위태롭다.
날 저문 하늘
저녁 빛은 탐스러운데
벗은 나무가 헐거운  제 몸보다
하늘보고 웃는다.
달이 
고개 숙인 마을을 서성거리다
뜰 앞을 가로등 옆에 내린다.
바람이 휭 불때마다
기댈 곳 없는 나무는 버겁다.
그래서 운다.
누군가 
자장가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입동(2) 
엊그제 불던
소소한 바람에
가을볕이 익더니
어느새
구름발치에서부터 
기어코 구릉까지 짓쳐들어온 바람
비를 부르고
잠든 문풍지를 깨우고
가로등 불빛이나 할퀴고
나목의 몸뚱이만 실컷 두들기고
끝내 새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빛깔 없는 너덜 길에서
실컷 게목을 지르곤 
미적미적 눈고랑만 만들고 있다.
긴 겨울이 꿈틀거린다.
 

  
입동(3) 
언제부터인지
잦아든 풀벌레소리
전신주에 가장자리에
흔적만 남아 있는 까치밥 바람소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작로 모퉁이에
장승처럼 선 나뭇가지 끝자락
빛바랜 활엽수 한 잎이 
혼자 외로워 보인다.
그러고 보니
가을 들녘도 텅 비었다.
씨앗을 날린 줄도 모르는 억새꽃이
꽃대만 하늘거린다.
먹구름이 궂은비로 쏟아지기 전에
서리가 차창에 내려앉기 전에
사랑 한 올 남기고
내 마음을 다 비워야겠다. 

 

출처 : 서우봉 노래
글쓴이 : 늘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