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길엄니 자살하다.
---한나 성초희---
바람이 휘몰던 그 어느날, 어느날 밤에 뒹구는
낙엽처럼 이브의 고통속에 첫 울음을 터뜨리며
인생들은 태어난다.
아담과 이브로 10개월여 머물던 자궁을 떠나
산로를 따라 우리는 태어났고 이 후로도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창조주의 뜻에 맞게 잉태와 출산은
이어지리라
그리고 누구라도,
한점 흠없는 아담으로 이브로 태어나 지구촌 무대에 배우로,
연출자 창조주께서 맡겨주신 배역에 맞게 뛰어난 연기자로
박수와 갈채를 받으며 나그네 옷을 벗을 때까지
살아가길 소망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한 점 흠없는 모습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등에 한 짐 보따리를
지고 태어난 이브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꼽추 팽길엄니다.
어인 연고로 고통의 짐을 스스로 안고 그는 이 땅에 오게
되었을까?
내가 그 여인을 할머니라 부르며 보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쯤이다.
유독,
집안일은 산더미인데다 대 가족 구성으로 일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으셨던 어머니께선 팽길 엄니의 도움을 자주 요청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꼽추 팽길 엄니,
그녀는 과부였고 슬하에 혈육은 외 아들 팽길이 하나 뿐이다.
장막은 기어 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오두막집 재래식 화장실은
바로 코 앞이고 가난한 자의 삶의 모델 이었다.
두루 기구한 여인이라 남의 집 일을 거들어 주며 끼니를 연명하는
처지이니 팽길이가 노총각 이지만 장가를 들 수 없었다 .
몇년 후,
세월이 흘러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고 팽길이도
사무관대를 쓰고 머리를 길게 땋았던 큰 애기 한테
장가를 가게 되었다.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고 예쁜 앞치마를 두른
색시가 밥을 해주니 팽길은 새 세상을 만난 듯 사랑과
행복에 젖어살았다 .
덩달아 팽길엄니도 행복했다.
거기다 예쁜 손녀까지 안겨주니 그녀의 고생스런
삶은 막을 내린 듯 했다.
밤이면 호롱 불 아래 팽길의 사랑은 무르익어 가고 초가집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짖는 아주 평화로운 삶이 그리도 짧을 줄을
신께선 아셨을까.
호박 넝쿨 담을 타면 연한 것 골라 따 밥솥에 찌고 된장찌개
숯불에 끓여 시어머니 밥상을 알뜰히도 챙기는 며느리가
세상에 제일 예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팽길이가 제 살던 곳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 살이는 안한다는데 팽길은 처가살이
까진 아니지만 처가 동네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당연 팽길 엄니도 따라 가셨다
그후,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으니 팽길엄니가 스스로 자살을 하셨다는
것이다.
자살 동기는,
불효 막심한 팽길이의 만행이었다.
처가 동네로 이사를 간 팽길은 자기 어머니가 꼽추라는 이유로
방에 가두고 바깥 출입을 전혀 못하시게 했다.
부끄러운 어머니라는 것이다.
평생에 장애의 멍에를 그림자 처럼 안고 자식하나 바라보며 남의
궂은 일 다하며 자식을 키웠건만 그 자식의 불효로 그만 죽음을
택한 불쌍한 팽길엄니.........
하늘이시어!
그녀의 영혼을 안위해주옵소서.
오늘날에도,
현대판 팽길은 존재한다.
복지 국가로 전향하면서 장애우를 배려하는 의식이 그리고
최근에는 장애인 차별금지 법이 국회를 통과 할 만큼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의식이 사라지고 있지만,선진국 수준엔 턱없이
모자란다.
나 자신이 준 장애인임을 모두는 망각한다
제 이의 팽길엄니가 아니 나오시도록 장애우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 빛이 바뀌어 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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