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 최영록 詩人님

[스크랩]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 띄우는 편지

° 키키 ♤ 2012. 11. 6. 01:51

  한 해의 끝자락이 멀지 않은 지금, 지나간 날의 두툼한 일기장을 들춰보면서 시간의 강물에 오롯이 침잠해봅니다.

   이제 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려 와 흰눈처럼 탐욕을 부려 놓는 세밑에서 주위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남아 있는지 겸허하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혹여 각박했던 나로 인하여 오랜 친구가 한사코 떠나간 건 아닌지, 무심결의 한 마디 말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었는지, 상대방의 의견은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번드르르 듣기 좋은 말만 하려하는 그런 사람들만 남아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 결과는 결코 타인에게 돌릴 수 없는 온전한 자신의 몫이겠지요.

  모든 걸 다 내주고 저만 홀로 함초롬히 붙박이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매년 이맘때 쯤 생각하면 가슴에 무언가 아련한 것들이 밀려옵니다. 우리의 가슴은 어째서 그 헐벗은 나무등걸의 자태에 달팽이의 촉수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우리 자신 철새 아닌 텃새가 되어버린 국적불명의 그 새와 함께 지구라는 이 별에 날아 온 나그네 였던 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도 이곳의 한 생애가 끝나면 또 다시 어디론가 길을 떠나야 하겠지요.

  그건 모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깨달음은 이리도 더딘데 실수로 가득찬 우리의 생애가 그것만으로 끝나 버린다면 너무도 가엾지 않은가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며 변두리 빈 터에만 붐비던 눈발이 나의 헐거운 뜨락에도 지친 몸피를 부리면 이제 머잖아 다가 올 새봄맞이로 또 다른 기쁨이 생기게 되겠지요.

  겨울이 깊어져 허허로운 하늘과 온 산야를 뒤덮는 눈꽃을 보노라면 누군가에게 꼭 죄진 느낌이 들고 겸하여 무언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 만큼 짙어가는 겨울은 우리들을 스스로 반성하게 하고 내면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삶이란, 아니 사랑이란 무엇이던가요?

  그것은 끊임없이 새 길을 만들어 가는 일이며, 그것을 지우는 일이고 또 다시 만들고 지워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끊임없이 새로 시작되고 끝나며,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바로 사랑이고 나아가서 인생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달리 말해서 산다는 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이란 끊임없이 상처주고 또 상처받는 가운데 부끄러움으로서 참회와 미안함으로서 용서를 비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으스스 찬바람이 휘몰아 칠 때마다 온 몸을 내려놓는 눈잎파리가 참으로 애처롭습니다.

  이 깊어가는 겨울 죄 많은 제가 용서못할 사람 세상에 뉘 있으며 용서하지 못할 일 또한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부끄럽고 감사하며 신에게, 올 한해 부족한 저와 인연을 이어 온 고결하고 어진 사람들에게 이웃들에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고개 숙일 뿐입니다.

  소중한 친구들과 더불어 보낸 한 해 참으로 고마웠고 진정으로 감사했노라고.

  앞으로도 순결한 마음을 다하여 변함없이 뜨겁게 사랑하겠노라고.

 

  신묘년 한 해를 보내며

  최고야  삼가

 

 

출처 : choig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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