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말씀

[스크랩] [CTS 새벽종소리] 2012년9월19일 QT - 성령 충만함의 의미를 (도서/사진/말씀)

° 키키 ♤ 2012. 9. 24. 03:24



성령 충만함의 의미를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성령을 더 많이 부어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미 성령은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성령 충만하라고 당부한 것은
우리 속의 성령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시지만 인간의 연약함으로
그 성령의 지배를 온전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함이란
성령에 지배되어 성령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과 능력으로
자신을 채우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김창대 목사의‘ 목사님도 모르는 성경 테마 여행’에서-

성령 충만함의 의미를
마치 유리병의 물이 모자라서 물을 더 채워 넣듯이
채워 넣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믿을 때 그대로 내주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반복해서 성취해야하는 과정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교제
이름 모를 두 들꽃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마치 그들은 서로 교제하는 듯합니다.
나도 날마다 이렇게 주의 얼굴을 향하여 교제하고 싶습니다
글쓴이 : 왕충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수료
2002년 ~ 2010년 몽골국제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2004년 이후 우우링슈드르쵸글랑(새벽이슬교회) 개척
끝까지 용납합시다 - 창세기 14:1~16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싱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시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9.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롯이 자신의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좋았던 땅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소돔과 고모라왕을 비롯한 5개 왕이 그돌라오멜을 배반하자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왕은 전쟁에서 패하고 네 왕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재물을 빼앗고, 그곳에 거주하던 조카 롯도 사로잡고 재물도 다 빼앗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쳐부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그의 재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옵니다.

창세기 13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조카 롯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하지 않은 것, 혹은 롯이 하나님의 동산같이 보이던 소돔과 고모라를 먼전 선택한 것을 두고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카 롯이 당하는 고난을 눈감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을 떠나서 소돔과 고모라에 정착한 롯이 어려운 고난을 당했을 때, 자신의 군사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의 북쪽땅 끝, 단까지 올라가서 롯과 그 재물을 다시 찾아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온유함을 생각합니다. 창세기 18장은 멸망 직전에 놓인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만약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인 10명이 있다면, 그곳을 멸하시겠습니까?”라며 기도했던 모습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상태에 따라서 롯을 용납한 것이 아니라, 롯을 있는 그대로 용납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를 용납하실 때,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보시고 용납하시고 안하시고를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감격하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참 어려운 말이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용납한다면, 끝까지 용납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사람의 모습에 반응하는 용납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용납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용납이라고 믿습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출처 : 鶴山의 草幕 舍廊房
글쓴이 : 鶴山 徐 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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