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말씀

[스크랩] [CTS 새벽종소리] 2012년9월20일 QT - 하나님 (도서/사진/말씀)

° 키키 ♤ 2012. 9. 24. 03:22



하나님


주님은 한없이 베푸시는 분입니다. 위대한 공급자입니다. 모든 축복의 원천입니다. 끝없이 너그러우시면 한없이 의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큰 소리로 되풀이해 가며 외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걸 아낌없이 나눠주시므로, 물질이 아니라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맥수 루케이도의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중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면 반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근원입니다. 그분과 함께 시작하는 인생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고요함
초원에 어둠이 내리면 온 세상은 고요 안에 머물게 됩니다.
이런 고요함은 더욱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지요.
주님의 음성이 계시기에 고요와 어둠은 두렵지 않습니다
글쓴이 : 왕충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수료
2002년 ~ 2010년 몽골국제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2004년 이후 우우링슈드르쵸글랑(새벽이슬교회) 개척
내가 아나이다 - 욥 30:23-31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24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25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31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23절).
욥이 여기서 말하는 <정한 집>이란 곧 무덤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무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모든 생물들의 집입니다. 그 집은 부자도 가난한 자도, 의로운 자도 악한 자도 피할 수 없는 죽은 육신의 최후 처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인간의 숙명이므로 살아있는 자들은 늘 그 엄숙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이 아니라 화 광명이 아니라 흑암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26절).
세상사란 늘 그렇습니다. 누구나 복을 바라고 광명을 원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와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주기가 십상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실망과 좌절만 안기고 아픔과 고통만 당케 합니다. 따라서 불확실한 이 세상에 소망을 두거나 기대를 가지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세상이 주는 잠시 잠깐의 불꽃같은 위로를 바라는 자야말로 결국은 무참한 실망과 흑암 같은 좌절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복의 진정한 근원이시자 참된 빛이신 주님께 기대를 걸고 소망을 두셔야 절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함이로다>(요 12:46).

이리의 형제 타조의 벗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29절).
이리와 타조는 그 음울한 울음소리로 자주 슬픔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미 1:8). 욥은 지금 자신의 처지가 이리나 타조처럼 고독하고 슬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야의 이리처럼 울부짖고, 타조처럼 신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시편 102편 7절은 <내가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다>고 합니다. 외로움이란 사랑을 호소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하나님도 아담이 고독해 보여 하와를 지어 짝이 되게 해주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곧 인간이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뜻이지만 그러나 더불어 살기 전에 홀로 살았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 일입니다. 창세기는 범죄한 인간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었다고도 합니다. 이 또한 인간의 고독성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닙니다. 감추었다는 것은 자신을 남에게 공개하기 싫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만의 깊은 비밀을 마음에 간직한 채 그 책임 앞에 홀로서는 고독한 주체가 됩니다. 외로움, 고독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십시오. 실은 그 때가 바로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너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수금은 통곡 피리는 애곡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31절).
형통하던 시절 욥은 자주 수금을 타고 피리를 불며 즐거워하였습니다(21:12). 그러나 지금은 웃음이 변하여 애곡이 되고 기쁨이 변하여 슬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성 밖으로 몰아내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십니다. 그런 연단의 과정에서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고 더욱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깊은 절망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빚으십니다. 혹독한 풀무불 속에서 모든 불순물을 태우사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순결한 그릇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 하고 아파해도 이 담금질을 멈추지 않으시고 계속하시며 어떻게든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통곡과 애곡이 우리의 거룩함을 위한 주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 66:12).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출처 : 鶴山의 草幕 舍廊房
글쓴이 : 鶴山 徐 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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