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작가님

[스크랩] <은총과 은혜에 관한 시 모음> 고은의 `은총에 눈을 뜨니` 외

° 키키 ♤ 2013. 11. 6. 22:24

 

<은총과 은혜에 관한 시 모음> 고은의 '은총에 눈을 뜨니' 외  

+ 은총에 눈을 뜨니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는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소중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고은·시인, 1933-)


+ 평생의 은총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질병으로 울음이 기숙하는 저녁입니다.
이 아픔이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아버지의 사랑의 채찍인가요?

슬픔의 저녁과 고통의
밤을 지나며 원망치 않고 기도합니다.
기도 속에 옛일을 돌아보고
새날을 준비합니다.

아버지는 치유와
회복으로 아침을 열어주셨습니다.
그의 진노는 잠깐이었고
그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저녁에 흘린 아픈 눈물을 잊고
기쁨이 넘치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제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됩니다.
베옷을 벗고 기쁨의 찬가를 부릅니다.
의의 길에서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영영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신의 은총

여명의 햇살로 왔다가
노을로 지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

사함 받지 못한 잘못도
탕감 받지 못한 빚도
깨끗이 청산이 되는 관문

회한을 잊고
용서와 화해의 끈이 되어
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사랑뿐

남은 자는
먼저 간 자의 제자가 되어
살아볼 만한
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
(한정숙·시인)


+ 삶 그리고 은혜
    
살다
살다
지치면

휴식처럼
다가오는
말씀의 바다

밀물처럼
다가오는
은혜의 바다
(심홍섭·시인, 1960-)


+ 은혜의 단비

비가 내린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은혜의 단비 생명의 단비
향그러운 하늘나라의 축복이 내린다
싱그러운 東쪽 하늘의 냄새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잎으로
잎잎이 송이송이 생명의
개가를 외친다
땅위에서 땅속에서 공중에서
오, 쉬임없이 생명의 작업을 계속하는
나무여 나무여 탐스러운 꽃송이
이름 모를 풀꽃 풀잎이여
논과 밭에서 푸르름을 더해가는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
오늘을 몸짓하는 생명의 찬가여
(안혜초·시인, 1941-)


+ 은혜
    
처음으로
나에게
너를 주시던 날

그날 하루의
은혜를
나무로 심어 숲을 이루었니라
물로 키워 샘을 이루었니라

처음으로
나에게
너를 그리움이게 하신
그 뜻을 소중히
외롬마저 두 손으로 받았니라

가는 날 오는 날에
눈길 비추는
달과 달무리처럼 있는 이여

마지막으로
나에게
너를 남겨 주실 어느 훗날
숨 거두는 자리
감사함으로
두 영혼을 건지면
다시 은혜이리
(김남조·시인, 1927-)


+ 은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당신이 곁에 계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과 함께 시작하여
내 의식의 구석구석에
당신이 살고 계심을
감사하나이다.
하루가 지나감은
당신과 만날 날이
하루만큼 가까와 옴을
압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삶을 극복하는
죽음을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강은 흘러가야
생명이 있듯이
사람은 죽어야만
생명을 가지는 것.
삶이 끝나는 것은
은혜입니다.
(김소엽·시인, 1944-)


+ 자연의 은혜 - 서울의 소년소녀들에게

애들아 들어라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라.
지금은 12월 겨울이지만
이윽고 내일
봄이 온다.

자연은 커다란 문을 열고
자연의 은혜를
활짝 열어 줄 것이다.

산이나 들에
꽃이 만발하고
싱싱한 나무가
녀희들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의 은혜는
너무도 넓고 기쁘다.
시골에 가서
그 자연의 은혜를
맛보아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미칠 것 같은 가을입니다 - 여러분의 은총에

한마디로 요약해서,
미칠 것만 같은 가을입니다.
나는 감정을 크레파스처럼 진열합니다
화려히 솟아오르고 싶은 순간의 진실로
산이여, 들녘이여,
여러분의 은총에 답사를 할까요.
내게는 일마다 과분하다고,
나는 주저앉아 목을 놓고 싶다고
울어도 괜찮겠지요,
죄가 되진 않겠지요.
고즈넉한 밤이 장강처럼 지나가고
가진 것 모두 버리려고 해요,
슬프지 않게,
내일 아침 가로수는  
불란서 망사 같은 실가지 사이로
가난보다 맑은 햇살을 흔들어댈 것입니다.
(이향아·시인, 1938-)


+ 흰 눈의 은총

생명들의 활동이 멈춘
차가운 겨울 숲 속에
凍死 직전의 소나무마다
조물주는 간밤에
두터운 솜옷을 선사했다.

칼바람이 가지 끝을 스치던
살을 베는 고통에도
말없이 견디는 잎사귀마다
긍휼로 보듬는 주의 손길이
깊은 은총으로 와 닿는다.

눈 덮인 풍경마저
어느 영화보다 더 아름답게
파노라마로 펼쳐져
행복 속에 내가 갇힌다.

동지섣달 긴긴 추위가
戰爭만큼 무서워도
하늘로부터 내리는 은총에
숲에는 평화가 가득하다.
(박인걸·목사 시인)


+ 눈 내리는 날의 은혜

사랑하는 사람들아
세상에 시달린
지친 눈을 가만히 떠보아라
밤새 쌓인 눈 위에 다시 눈이 내린다

미움과 미움을 팔던 가슴
눈이 내리면,
마음에 돋친 가난한 가슴속
미움의 가시들이 저절로 고사하고

내리는 눈은 하나님의 고운 편지
가장 순결한 용서와 사랑의 씨앗
여린 감성 충만한 은혜의 텃밭
사랑과 용서의 꽃들을 피우자

은폐된 죄악의 세상
그래도 세상이 그리워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잿빛 슬픈 은혜의 얼굴

하나님도 사람이, 세상이 그리워
그리움 가득한 사랑의 징표
흰 눈이 되어 내린다
(고은영·시인, 1956-)


+ 들풀들의 은혜

장마철에 퇴직을 하니
자고나도 밤이라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늘 어두웠다

텅 빈 거리를 홀로 걸어도
주위를 돌아보면
골목길로 접어들어
걷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선
외로움을 느끼고
아무도 없는 산에서
들풀들의 위로 받는다

진정으로 외로울 때
힘과 용기를 주던
그 은혜 잊지 못하여
죽어도 찾아가리다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내겐 모두 은혜인 것을

내가 아픔을 몰랐다면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었을까?
새날이 기다려지고
아침과 함께 찾아온 햇살이 저리도 고운 것을
내가 알기나 했을까?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반갑고
함께할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한데
더하여 또 다른 하루를 선물로 받음이
내겐 큰 은혜인 것을,

아이야!
하얀 보자기를 준비해두렴
보라색 실로 나의 이니셜도 수놓고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내의 미소랑
처음 두근거렸던 내 심장의 수줍음을 담아
빨간 끈 가지고 열십자로 묶어서
고이 보관해두렴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사랑 때문에 참으로 아름답고
믿음이 있기에 진리를 깨닫고
소망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을,
아!
아름다운 세상
서로 도와 가며 살면 더 좋은 세상
그곳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
내겐 큰 은혜인 것을,
(오광수·시인, 1953-)


+ 어버이 은혜

하늘이 있고 땅이 있듯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듯
대대로 이어진 연의 끈

그 끄나풀잡고
나 여기 있음을 감사합니다.

오는 바람 가는 바람
그 바람 속에
생명이 있어 숨쉰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지만
오늘은 감사한 마음 잊지 않으렵니다.

만물 중에
핵 같은 점 하나 여기 있음을
하늘에 감사합니다.
(하영순·시인)


+ 은혜 갚기

세상을 살면서
우린 많은 은혜를 입는다

부모 형제 은혜
친구들 은혜
주변분들 은혜

은혜를 모르면
사람도 아니제 하면서도
은혜를 잊고 살 때가 많아

은혜 갚기가 쉽지 않네
사람으로 살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네.
(이문조·시인)


+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 나게 내려 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구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보내 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이 불쌍한 꼴이 눈에 띄신 모양이다.
얻어맞아도 얻어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시늉이건 참이건
느긋하게건 절대절명에서건
즉시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성찬경·시인, 1930-)


+ 은총(恩寵)

은총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아도 좋아라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신 것이
언제였던가

첫사랑의 순수한 기쁨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나의 작은 가슴이
터질 듯 충만했던 그때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길
가만히 뒤돌아보면

아!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그분의 한결같은 동행

크신 그 은총 생각할 때마다
남몰래 눈물짓네

오늘도 그분의 은총의 이슬비
아롱아롱 나의 눈물로 맺혔어라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출처 : 당신이 머문자리는 아름답습니다
글쓴이 : 정연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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