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작품

[스크랩] ?벽초지 수목원-국화가 피워낸 가을

° 키키 ♤ 2012. 11. 1. 01:03

 

 

 

 

 

벽초지碧草池 수목원

                                       -국화가 피워낸 가을

 

 

 

 

 

 

글, 사진 김건수(samsung NX 20, 200 :17-35mm, 50-200mm)

 

2012년 10월 26일

파주 시청 소속 '싱싱기자단'의 초청을 받고서

카메라와 기사작성법을 강의하기 위해 파주시에 위치한

'벽초지碧草池 수목원'을 찾았다.

이곳은 자전거를 타고 독서를 하기 위해 내가 즐겨 가는 곳이다. 

 

 

벽초지...

그 이름에 걸맞게 옥돌의 푸름과 맑은 기가 넘치는 곳이다.

아직도 유명세를 타지 않아 고적孤寂하게 산보를 하며

자연의 신비를 깨칠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여기엔 국화가 피워낸 가을이 빛나고,

형형색색의 국화는

떨어지는 낙엽포래를각주1 휘감고 벌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지조 높은 기상을 닮으라는 '하련원' 정원을 지나

이루어지 못한 사랑이 나무가 되어 이어진 '연리지'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습지원'에서는 벽초지의 전경을 확 트인 가슴으로 바라 볼 수가 있다.

호수는 가을에서야 고요하다.

 

무념무상의 다리無心橋를 건너는 사람들은

곧 '파련정자'에서 능수버들 사이로 언듯 보이는 

연못 건너에 돋아난 갈대를 조망할 것이다.

 

그 갈대는 누구가의  눈으로

빛 바래진 사랑의 흔적을 찾아

가슴 속 살망한각주2 기억의 조각을 꺼내게 할 것 같다. 

 

 

'연화원'에도 가을 하늘이 쏟아져 내려 감색紺色각주3으로 물들었다.

연잎도 지쳤나 보다.

6월의 녹파綠波는 힘겹게 달려와

이 가을 끝에 또 다른 단풍이 되었다.

'내가 먼저 가니 네가 슬퍼마시오,

그저 다음에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면 될 것을...'

바람이 일 때마다 연못은 그렇게 울고 있었다. 

 

 

푸름도 결국 가을에 편입되고,

하늘에 가까이 갈수록 붉은 담쟁이도 정념의 불꽃을 지워야 하고,

모든 빛은 갈색으로 소멸된다.

나는 그 갈색을 '가을색'이라 부르고 싶다.

 

 

'수련길'은 아직 가을 초입이다.

그 가을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나의 뇌리에는

김광균 시인의 감성이 스쳐 지나간다.

광균은 가을을  아프게 노래했다.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그의 시 '추일서정' 중에서 

 

가을은 '그리욺'의 계절일까?

그리움에  자그만 인생길을 닮은 'ㄹ'을 얹어 보았다.

세월을 그리워하다 끝내 눈물을 뿌리고 울고마는 '그리욺'의 계절을

시인은 허망한 돌팔매의 사라짐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가을에는 사람은 혼자 슬프다.

 

 

'사라짐'보다 가슴을 가두는 말은 없다.

인간은 이 옹골송골 솟아난 풍경에

그 까닭을 두고 늘 가슴 가까이 두고 싶어한다.

역광에 빛나는 열매는

늘 사금沙金처럼 누구의 가슴마다 별이 되어 열린다.

영속으로 빛날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을 햇빛은 너무나 짧다.

 

이 가을이 다가면

가지는 추운 몸으로 삭풍에 우줄우줄 

겨울을 걸어 갈 것이다.

'시인들은 그 시절 이곳에 다시 와

바람에 베어진 가지의 인동忍冬의 모습을 시로 새겨주었으면...'

하고 기도해 본다. 

 

 

 

인동을 하기 위해

주목의 가지는 가을에 겨워 제 힘을 놓아 잎새를 모두 놓아버려,

이 길은 맨발로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비어짐은  채움의 전치사前置思이다.

비움의 발길로 이 길을 가고 싶다.

내 곁에도 늘 이 주목의 가지와 누군가와 뒤엉켜져

같이는 아니라도

마음만은 함께 걸었으면 참 좋겠다.

 

 

누군들 봄꽃으로 남고 싶지 않겠는가?

가을 바람은 꽃대를 째고야 말았다.

꺽여진 꽃대는 사멸을 맞는 시각時刻일 것이다.

그의 흘러온 모습을 살피니

꽃대는 호수 위에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을 새기고 있었다.

어떠한 가벼운 소멸도 스스로의 그림자로 자신을 완성한다.

꺽이기에 그 존재의  비의秘意적 모습이 성기는 것이다.

 

 

수목원 초입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화 다 모였다.

모두 가을에 빛을 발하는 추국秋菊들이다.

국화 옆에 서 보았다.

 

소쩍새의 울음은 붉은 꽃잎에도 묻어 있었고,

먹구름 속의 천둥의  소리는 사라졌지만

갈 바람에 꽃대는 그 울음을 새겨내어,

거울 앞에선 내 누님의 모습을 이제서야 회억하게 된다.

가까이 있음에 멀어진 단어 '누나'를...

불온한 밤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 향기에 가을이 되어

나의 몸에는 국화의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내 시각視角이 떠난 후

국화는 달빛에 내려 앉았다는 소문이 들릴 것이다.

그 기별은 겨울밤에 빗장 걸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향기만 남아 

 겨우내  백일동안 

또 다시 봄을 꿈꾸게 한다. 

.

.

.

 

 

 

문을 나서기 전 이곳 주인장 박정원님께 인사를 드리다,

 이성근 미술 전시관이 새로 문을 열었단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이성근 화백을 겨우 만날 수가 있었다.

나는 예전에 운보 김기창 화백과

20일 동안 중국 화첩기행을 함께 다닌 적이 있었다.

운보선생님은 늘 고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았지만 

그 화폭에 드러난 필치는

늘 강하면서 부드러웠다.

운보와 함께 '후소회'에서 활동한 이성근 화백은

그래서 인지 더욱 친밀감을 주었다.

김은호 화백의 제자인 그의 그림은

늘 이중섭화가의 필치를 유추하게 한다. 

미술 평론가 전규태는 그의 작품세계를

'해체와 버무림의 미학'이라고 설명한다.

 

 

미술에서는 목불인정目不認丁각주4인 나는

그의 '해체와 버무림'의 작품 몇점을

가을걷이로 소중하게 거두어 이곳에 담아 놓았다. 

 

 

 

 

 

                  초등학생도 제 블로그에 온다는 소식을 접해서 그들에게 어려운 말은 각주를 첨부해 봅니다.^^

 

                  각주

                  1.낙엽포래 : 전라도 사투리 '눈포래'에서 그 의미를 따와 제가 만든 단어 입니다.

                                   낙엽이 바람에 몹씨 흩날리는 모습을 연상하셔도 좋습니다.

                  2.살망한 :아주 작은

                  3.감색紺色 :검은색을 띤 푸른색

                  4.목불인정目不認丁: 낫 놓고 기억자도 모름

 

 

 

 

출처 : 풍륜(風輪)을 꿈꾸다
글쓴이 : 풍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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