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본 적 없는 시청각장애 남편 "청혼은…"
부부 ‘손의 대화’엔 거짓말이 없다
하늘을
나는 ‘우주 판타지’ 소설 쓰는 게 꿈
.그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시청각 중복 장애인이 됐다.
촉각만으로
세상을 느낀다.
그의
아내는 키가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인 1m20㎝다.
세 살
때 허리를 다쳐 척추장애인이 됐다.
남편이
달팽이처럼 느리게나마 세상 속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눈과
귀가 돼준 아내 덕분이다.
조영찬(41)씨와
김순호(49)씨 부부 얘기다.
그들은
점자를 손등 쪽 손가락 위에 찍는 점화(點話)로 대화를 한다.
아내가
강의실에서 점화로 강의 내용을 전달해준 덕분에
남편은
지난달 나사렛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이달
같은 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최종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이들
부부의 사연은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말 암스테르담 국제다큐 영화제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대상을 받았고,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형광등 갈아 끼우는 것조차 커다란 도전인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이
감독은
“동정의 시선으로 찍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촬영 허가를 얻어냈다”
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천안에서
올라온 이들을 만났다.
인터뷰는
달팽이만큼 느리게 진행됐다.
질문을
아내 김씨가 점화로 전달하면 조씨가 육성으로 답했다.
그는
시각을 잃은 뒤 서서히 청각을 잃었기 때문에 말은 할 수 있다.
-소설가는
시각·청각적 체험이 필요하지 않나.
“보고
들어야 뭔가 묘사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좌절한 적도 있다.
30대 중반 점자단말기를 받은 뒤 빛이 보였다.
책을
맘껏 읽을 수 있었다.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현실이 답답하기에
질주하고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
머릿속에서
늘 상상의 나래를 편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를 쓰고 싶다.”
영화에는
조씨의 자작시가 자주 등장한다.
.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그가
존재를 의심한 적 없다고 한 별은 자신의 꿈과 희망이다.
-손끝으로 느끼는 세계는 어떤가.
“촉각은 제한적이지만 가식이 통하지 않는다.
손으로는
가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손을
잡으면 마음이 느껴진다.
촉각으로는
섣불리 전체를 판단할 수 없기에 항상 겸손해진다.”
그는
한번 악수한 사람의 손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주 나무를 껴안는다.
그는
나무가 자신과 같은 시청각 장애인 같다고 했다.
소통하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기에
늘 남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는 존재 말이다.
-손끝으로
만져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무, 꽃, 빗방울 등 자연을 만질 때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건 아내의 손가락이다.
아내의
손끝에선 꽃향기와 별빛이 느껴진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내의
얼굴을 본 적 없는데.
“아내는
맑고 순수한 소녀 같다.
1998년 신앙공동체에서 처음 만났다.
사귈 때 연애편지 써달라고 하길래 결혼한 뒤
내
삶으로 연애편지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게
프러포즈였다.”
아내는
식사할 때 점화로 남편에게 밥과 반찬의 위치를 알려준다.
설거지는
늘 함께한다.
키가
작은 아내는 받침대를 딛고 설거지를 한다.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하는, 빠듯한 살림에서
가장 큰
사치는 돼지불고기다.
고기
요리를 할 때는 동료 장애인을 불러 파티도 연다.
-부부
싸움할 때도 있나.
“싸움 자체가 안 된다.
손을
잡으면 화가 남들보다 빨리 풀린다.”
아내
김씨는 살짝 눈을 흘기며
“화나면
점화를
할 때 손톱을 세워 콕콕 찌른다.”
고
했다.
-장애를
비관한 적이 많았을 텐데.
“처음엔
그랬다.
신앙을
가지면서 마음이 치유됐고,
아내를 만나면서 세상이 밝아졌다.
장애가
없었다면 천사 같은 아내와 특별한 사랑을 못 했을 거다.
장애가
선물처럼 느껴진다.”
조씨의
또 다른 자작시 한 편.
‘사람의 눈, 귀, 가슴은
최면
또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 늙어간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
-어떤
의미인가.
“사람들은
돈, 화려함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진실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눈과 귀를 혹사하지 말고,
가끔은 나처럼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고 듣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가장
큰 소원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과 교회를 세우고 싶다.
그리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만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내와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조씨에게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느냐”
고
물었다.
그는
“열 번 태어나도 그럴 것”
이라고
했다.
아내는
“그림자가 어딜 가겠어요”
라며
수줍어했다.
아내는 그 말은 점화로 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느낌으로 아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점화(點話)
=시청각 장애인의 손등 쪽 손가락 위에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하는 방식.
조영찬씨는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시청각장애인 대회에서 만난
일본인
교수로부터 이를 배운 뒤 아내와 동료 장애인들에게 전파했다.
정현목
기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