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말씀

[스크랩]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 키키 ♤ 2011. 10. 25. 01:04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비아돌로로사 란 말은 
라틴어로 비탄의 길. 슬픔의 길 이란 뜻으로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무실에서
골고다언덕까지 연결된 1.5㎞정도의 길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따라서 비아돌로로사는
기독인들에게는 구원의 길이자
기독신앙의 완성을 의미한다

비아돌로로사는
채찍교회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어
무덤교회에서 끝난다

채찍교회는 빌라도의 집무실이 있던 곳에 세워졌고
예수는 이 곳에서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진 뒤
골고다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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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돌로로사는 모두 14개의 지점으로 구분 된다
빌라도법정. 선고교회. 채찍교회. 첫번째 넘어진 곳
마리아를 만난곳.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간 곳
베로니카를 만난 곳. 두번째 넘어진 곳.
예루살렘여인들을 위로한 곳. 세번째 넘어진 곳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옷을 벗긴 곳
형틀에 못박힌 곳. 운명한 곳
아리마데 요셉이 시체를 내린 곳. 예수무덤
등이다
돌로로사는 너비가 2m밖에 되지 않는 좁은 길이다

십자가의 길

 

제1지점 - 예수가 재판을 받은곳
빌라도의 법정 (현재는 아랍학교가 있음)

안토니오 요새의 남쪽 부분으로
성전 뜰에 붙은 자리로 예수께서
사형 언도를 받으셨다고 전해지는 곳
(요19:4-16)

헤롯 시대
예루살렘의 북쪽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의 동북쪽에 요새를 건축하였는데
로마에 의하여 성전 북편을 감시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총독들이 명절 때가 되면
가이사랴로 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곳에 있었는데 예수님을 심문할 때
빌라도도 이곳에 거처하고 있었다

제2지점 - 가시관교회
예수께서 십자가 형틀을 짊어지셨다는 곳 (요19:17)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채찍질 교회 (The Flagellation)
천주교 소속의 성경학교 교정에 있으며
주후 1839년에 지어졌고
1929년에 십자군 시대 건물 모양으로 개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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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회의 천정에는 가시관이 모자이크 되어 있으며
제단 주변의 3면은 색유리로 만들어져 있는데
바라바가 놓임을 받고 좋아하는 장면과
예수님이 채찍질 맞으시는 장면과
빌라도가 손을 씻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현재 알-오마리엘 대학 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준 후
자기는 죄가 없다고 손을 씻었던 그릇이라
전해지는 돌그릇이 있고 
마당은 예수께서 재판 받은 장소로 
네모나게 깎은 돌들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선고교회
(The Church of Ecce Homo)
1868년에 봉헌된 교회로
현재는 시온 수녀원 소속 건물이다.

안토니오 요새 였든 곳으로 
교회 제단에 있는 아취는 주후 2세기에
로마 사람들이 지은 개선문의 한 부분이다


다음 건물에
빌라도가 가시 면류관과 자색옷을 입고 나오신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보이며

보라 이사람이로다 (에코호모) (요19:5) 라고

외친 곳으로
에코호모 교회가 있다

로마군병들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마27:27-31) 라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예수님을 조롱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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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스 트로토스 (Lithos Trotos) 란 
돌 판
이란 뜻으로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 판을 말한다  

요19장 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박석 (히브리 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 박석이 곧 리토스 트로토스 이다

돌바닥 밑에는
안토니오 요새가 있을 당시에 사용하던
큰 물 저장소가 지하에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물이 저장 되어있다.

왕의 놀이 (The King's Play) 라는
로마 군인들이 모여서 쉬고 놀던 곳으로

오늘날 빌라도 법정 자리에 위치해 있는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발굴된 돌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과
로마군인들이 장난으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돌바닥 밑에는
안토니오 요새 있을 당시에 사용하던
큰 물 저장소가 지하에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물이 저장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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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점 - 십자가를 지고 처음 쓰러진 곳
예수 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첫번째 쓰러지신 곳으로
에코 호모교회 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다가
남쪽으로 꺾어지는
출발점에서 150여m 되는 지점으로 모서리에 

순례자들이 이 곳은 기념하여
1948년에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신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진
 
작은 기도실를 지었다

교회 입구 윗쪽에 십자가를 지시고
쓰러지신 조각이 있다고 한다
 

밤새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실 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의 성화가 교회 정면에 그려져 있다

십자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우리들의 죄로 인한 무게였을 것이다.



제4지점 -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3지점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으로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81년에 길가의 좁은 문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조각해 놓은
작은 예배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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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4지점에서 남쪽으로 10m 정도 가다가
서쪽 방향으로  치즈 골짜기를 벗어나
골고다를 향해 언덕 길이 시작되는 곳.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했던 곳
(마27:32)
주후 1895년 천주교에서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다 속량을 받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쁨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아야할 것이다




제6지점 -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이 곳은 예수님께서 피와 땀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 때
여인이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 준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
1895년 비잔틴 시대의 코스마스 수녀원 세워졌다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이 여인에 대해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음을 입은
여인 (막 5:25 -34) 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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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지점-
  두번째로 쓰러진 곳
예수님시대에 예루살렘성의 서쪽 문이 있는 곳으로
예수님은 두번때 쓰러지신 곳으로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 삼거리의
서쪽 희랍 정교회로 문 위에 표시를 해놓았으며 
1875년 부터 카톨릭에서 학교사용하고 있다

이곳을 나가면 서쪽 영문밖이 된다.
그 곳에 골고다 언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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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지점 - 예수가 마리아를 위로한 곳
이 지점은 돌벽에 라틴 십자가와 희랍어로
NIKA = 예수님은 승리하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슬피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곳을 기념하는 곳이다
지금은 희랍 정교회 벽으로 되어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31)

제9지점 - 세번째로 쓰러진 곳
골고다 언덕의 정상을 바라보는 곳에서
3번째로 쓰러지신다

지금은 애굽의 콥틱교회
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교회 지하로 큰 지하 물 저장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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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지점 -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분묘교회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된 곳이다

교회 입구 오른쪽에 계단이 있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옷을 벗기고 제비 뽑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 사형틀로 끌려가신다

분묘교회132년 하드리안 황제때
예수님의 십자가 자리에는 비너스 신전
무덤자리에는 제우스 신전을 세웠다

그후 콘스탄틴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의 요청으로 신전들을 허물고
326년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지금의 교회는 십자군 시대에 복원시킨 모습이고
오스만 터키시대에
문 한쪽을 막아서 한쪽 문만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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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지점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사형 집행을 선고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망치로 3개의 못을 박은 곳이다 

이 지점은 카톨릭 소속이며
제단 오른편 프란시스코 수도회 예배당 앞의
성화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 보는
어머니 마리아 모자이크가 있다  

이곳에 세워진 성묘교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장소가 구별되어 있다

성묘교회의 성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잊지 안토록 성화를 벽에 그리면서
초록색이 감도는 은은한 색을 띠고 있다 

작가는 예수님의 몸에 못이 박히는
고통을 지켜보아야 하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 색으로 성화 위에 옷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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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지점-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운명하신다
(마27:45-53).

하늘은 빚을 잃고
바위들을 갈라지고 무덤이 열린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가상 7언
을 남기고
마침내 구원을 이루셨다

이곳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금속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씌어 놓았고
바닥에는 십자가를 세웠던 자리에
손을 넣을 수 있도록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성소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졌다 (눅 23:44-45)

그리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린 일련을 사건을 보여주기 위하여
갈라져 있는 바위 유리로 덮어서 보여주고 있다

제 13지점 -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예수님께서 사형을 당하신 날이
유월절 금요일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큰 명절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빨리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아리마대 요셉이 요청하여 달아 내린곳이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뼈가 하나도 꺽이우지 아니하리라
(요 9:36)

십자가의 사형은
오랜시간동안 물과 피를 다 쏟고 고통을 당하면서 죽음을 받이하면 형벌로 명절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숨을 거두지 않은
사형수는 그 뼈를 부러뜨려 목숨을 끊어 놓는다



제14지점 -
 
성묘교회
324년에 첫번째로 건축된 후 성벽으로 둘러싼
시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며 분묘 교회 안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소속
자리로
예수 께서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336년 헬레나에 의해 세워졌으나
페르시아 회교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십자군 때 재건되었다

무덤 교회 안에 들어가 작은 방을 지나서
좁은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첫째방 가운데 대리석 반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이
예수님께서는 무덤속에 계셨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낙심하여 고개를 떨구었지만
그러나 주님은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아니하셨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이 무덤은 더 이상 예수님의 무덤이 아니고
빈 무덤이다

기독교는 무덤 속에 머물러 있는 신앙이 아니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종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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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의 성묘교회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곳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 
그리고 그의 무덤이 있는
비아 돌로로사 (슬픔의 길) 의 마지막
골고다 언덕에 (갈바리아 언덕) 에 서있는 교회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헬레나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가 지은 것이다

그녀는 예수가 책형을 당한
십자가의 조각을 이곳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입구 정면에는 죽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올리브유를 발랐다는 석판이 있고
왼쪽으로 가면  예수의 무덤이 있고
교회 위에는 콥트교 수도사들이 살고 있는
촌락이 있고 에티오피아 교회를 통하여
올라가게 되어 있다

무덤 앞 예배소에는  세계의 중심  이라는
술잔이 놓여 있다.



골고다 언덕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11년후
주후 44년에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새롭게 세운
성벽으로 인하여 성안에 위치하게 된다

20세기 중반에 러시아 호스피스 부근 교회의
동쪽과 북쪽에서 고대 성벽의 유적을 발견하였다

교회 안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무덤은
당시 성 밖이었다는 중요한 증거인데
유대인의 법으로는 성스러운 성 안에는
아무도 매장될 수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는 1세기
크리스찬들에게 경건히 모셔졌다

주후 135년 하드리안 황제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흔적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갈보리 언덕과 예수의 무덤에 쥬피터를 위한
로마 신전을 세웠다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장소에도 똑같이 하였다)

이것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
2세기 후에 콘스탄틴 황제가 정권을 차지 하기
전까지 이 장소들은 잘 보존이 되었기 때문이다

326년에 콘스탄틴과 모후 헬레나 여왕의 의하여
하드리안 신전은 파괴되고 갈보리와 무덤 위에
바실리카식 교회당이 세워졌으나
614년 페르시아인들에 의하여 파괴 됐다

그리고 아봇 모데스토스에 의하여 전보다는
작게 건축 되었으나
1009년에 칼리프 하켐에 의하여 파괴되고
이것을 이유로 십자군이 역사에 등장한다

1048년에 콘스탄틴 모노모쿠스에 의하여
재건 된후 114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해
성묘교회를 세운후
여러 번의 증축을 번복하였지만
십자군의기초 모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1852년의 터키시대에 정해진 6개의 교단에 의하여
성묘교회는 관리되고 있다

 


출처 : 살핌과나눔
글쓴이 : 살핌과나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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