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피는나무 詩人님

[스크랩] 보리밭 이야기..

° 키키 ♤ 2010. 12. 3. 00:46

 

 

보리밭 이야기

 

   

 

가을에 추수한 다음 곧바로 논을 갈아엎고

그 위에 보리를 파종하면 추운 겨울이 지나 이른 봄에

가장먼저 추위를 극복하고 올라오는 새싹이 보리입니다.

 

1952년 12월 미국 아이젠하워가

부산에 있는 유엔군 묘지를 방문했을 때

한 겨울에 정주영씨는 보리밭에서 새파랗게 자라는 보리를

수십 트럭 옮겨 심어 미군묘지를 녹색 잔디를 대체한 사건은

전설적인 신화로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보리는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겨울에 흙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있다가

이른 봄에 올라오는 새싹을 밟아도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뿌리를 단단히 내리게 도와주는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 밟아주기도 합니다.

 

  

 

 

가을에 벼를 탈곡하여 양식을 삼은 이후

다음해 탈곡하기 까지 쌀이 떨어지게 되는데

그 중간에 보리수확이 있어서

가을까지 대체식량으로 양식을 삼았습니다.

 

보리쌀은 일반미에 비해서 보기도 안 좋고  맛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쌀밥에 조금씩 섞어서 먹었는데

그래서 보리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만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보리밥이 별미로 통하고 있지만

전에는 쌀을 대체하는 식량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기 때문에

보리로 대체 할 자리가 필요 없지만 말입니다.

보리가 대체식량으로서 자리를 잃어버린 것 같이

보리밥 같은 인생은

자신의 자리를 얻지 못해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막 산업사회로 들어설 당시에는

단순노동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전에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체인력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머리를 숙이고라도 일하려면 하라는 식입니다.

그것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직장입니다.

 

 

 

 

하지만 쌀이냐 보리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맛의 차이일 뿐

둘 다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인 것은 사실입니다.

 

둘의 차이가 상하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라는 것이죠.

상하 차이로 인식하는 것은 사람들의 편견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상하차이로 줄을 세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부에 등수를 매기고 스포츠에 등수를 매기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인격이나 역할 분담조차도 등수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편견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 라고 말씀 하신 것은

일반인들도 다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보리와 쌀 중에 어느 양식으로 오셨을까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예수님은 보리로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명절중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 하셨는데

그 때가 바로 보리를 일찍 수확하는 날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화려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분의 내면의 인격과 고귀한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받는 인기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고귀하신 분을 사람들은 십자가로 내몰아 처형시켰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바라보는 줄 세우는 편견 때문인 것입니다.

 

  

 

 

 

인격으로 말 한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의 한 조각씩 나누어 가진 것입니다.

우리 몸의 지체 중에 손이 더 중요하냐

발이 더 중요하냐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보리의 역할을 하면 어떻고 쌀의 역할을 하면 어떻습니까?

몸의 건강을 증진시켜주면 되는 것이지요.

쌀에게 가지지 않은 것을 보리가 가지고 있고

보리가 가지지 않은 것을 쌀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지 상하의 차이는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적인 편견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열등의식에 굴복하는 일입니다.

내 스스로 나를 존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존귀하게 여겨주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 할 수 없습니다.

 

편견과 차별이 있다 해도 나 스스로는 당당하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의식만 있다면

편견도 역시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글:  겸향 이병한   

그림: 이숙자 화가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여

차별하는 것을 너무도 싫어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빈부의 격차, 신분의 격차, 계급사회는 하나님의 적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름받은 백성들입니다. 단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샬롬!!

 

 

- 디아스포라 -

 

                                          

 

 

출처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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