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소쇄원 위치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담양군 남면 지곡리 광주호 상류에 자리한 소쇄원(사적 제304호)은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과 함께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원림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조선 중종 때의 풍운아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게 되자 그의 제자
양산보(1503~1557)가 세상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지은 것입니다.
소쇄원은 1527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3대 약 70년간에 걸쳐 조성한 대원림으로
아직도 조선 중엽의 민가 별서정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소쇄'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으로 결국 소쇄원이란 물 맑고 깨끗한 원림 즉,
속세를 떠난 아름다운 곳이란 뜻입니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대나무숲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입구에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 숲을 지나면 갑자기 탁 트인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정원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연못이
보이고 왼쪽의 연못 옆에는 양산보가 손님을 맞이하던 대봉대라는 정자를
최근 복원해 놓았습니다.
개울을 건너면 계단과 길고 야트막한 담장을 만나게 되는데 담장에는
'소쇄공 양산보의 초라한 집'이란 뜻의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라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가 소쇄원의 문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 소쇄원의 중심이 되는 곳에는 귀한 손님이 묵어
갔다는 광풍각이 자리합니다. 광풍각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기
쉽도록 시야를 열어 놓았으며 뒤쪽으로는 도원명의 무릉도원을 재현이라도
하는 듯 복사동산이 꾸며져 있습니다.
광풍각 방에는 세밀하게 표현된 '소쇄원도'가 한 장 걸려 있어 당시 원림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광풍각에서 작은 문을 지나 한 두단 높은 곳에는 소쇄원의 중심건물이라
할 수 있는 제월당으로 이어집니다. 제월당은 소쇄원 주인을 위한 사적공간으로
원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제월당이 위치한다는 사실은 양반 특유의 권위의식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민간정원, 한국 건축미의 핵심이라 칭송되는 소쇄원은 문학은 물론
조경이나 건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들러야 할 곳입니다. 소쇄원은
남도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명소로써 남도의 멋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소쇄원 안내도
소쇄원의 유래
가사문학 안내도
광풍각 소쇄원입구에 위치한 초정과대봉대는 양삼보가 꿈꾸는 염원이 담겨있다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활을 하였다
소쇄원의 중심건물 제월당
대표적인 건물을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이름지었다
주인이 거처하면서학문문을 몰두하는 공간이다
소쇄원에 대하여 설명하는 해설사 오여사
설명을 열심히 듣고있는 관람자들
백양사(白羊寺)는 전라남도 장성군 백암산(白巖山)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다.
호남지역 사람들은 ‘산은 내장산이요, 절은 백양사’라는 말을 곧잘 한다.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명찰 가운데 명찰이 바로 백양사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표현일 것이다.
백양사를 찾는 이들에게 대웅전 뒤편에 솟아있는 백암산의 정상인
백학봉의 빼어난 절경은 너무도 인상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노령산맥의 한 갈래에 솟아있는 백암산은 산에 유독 흰 빛깔을 띤 바위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대웅전 뒤로 솟아있는 백학봉은 봉우리가
마치 학이 앉아있는 듯한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백양사 경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이 백암산과 백학봉은 한눈에 들어와
너무나 친숙해 마치 백양사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백양사는 632년 여환(如幻) 선사가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1034년 중연 선사가 중수한 뒤 정토사(淨土寺)로 불렀다.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그 뒤로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30본말사법에 의해 전국 30본산 가운데
하나에 속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가운데 하나로 이 지역의 여러
사암을 거느리고 있다. 근래에는 백양사 총림(叢林)이 설치되어 고불총림으로
부르는데, 호남 지역의 선승과 학승들을 배출하는 총본산이기도 하다.
또한 천진암, 운문암, 청류암, 약사암 등 여러 산내암자 모두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운문암은 고려시대 때부터 납자들의 정진도량으로 유명하였는데,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선승들이 반드시 찾아와 참선일매에 빠지고 싶어하는 곳이다.
백양사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아 대한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멀리 주차장에서부터 쌍계루가 있는 영지까지
나 있는 길은 버드나무와 벚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 가지가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백양사의 이 길은 절로 들어서는 길 가운데서도 최고로 아름다운 광경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쌍계루 누각 앞에 넉넉하게 넓게 들어선 영지에 쌍계루가
비치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쌍계루 안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시인들이 이곳을 찾아와 지었던 시를 적은 현판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그 가운데는 고려시대의 충신으로 유명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시가 적힌 현판도 걸려 있다.
쌍계루 뒤편에는 비림(碑林)이 있어 백양사에 주석했던 역대 고승 조사들의 부도와
비가 모아져 있다. 백암산의 기경을 뒤로 하고 앞에는 고요한 영지를 마주한 채 서
있는 비림에서 백양사의 또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 하나 백양사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은 경내에 자리한 비자나무숲이다. 대부분 수령이
수백 년이 넘은 울창한 이 숲은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을 정도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경관을 자랑한다.
백양사의 문화재는 극락보전, 대웅전, 사천왕문, 소요 대사 부도, 청류암 관음전 등이 있다.
그리고 그 밖의 비지정문화재는 최근에 문을 연 성보박물관에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 성보박물관은 절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아담하면서도 내실 있게 꾸며져 있어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백암산의 산세와 썩 잘 어울리고 있다.
[자료제공 : 사찰문화연구원, 현대불교미디어센터]
백암사 드러가는 길양숲
단풍의 아름다움
백양사의 주위 감나무
백암산 정상을 배경으로 (김 준열 변호사와 윤 병주(용돌이)
백양사 입구에 있는 갈 참나무
백양사 쌍계루의 단풍
백양사 쌍계루
연등이 평시인데도 많이 걸려있다
백양사 입구문
백양사 대문에 있는 사천왕
범종각
백양사 대웅전
극락보전
명부전
대웅전 앞에서 김 준 열 변호사와 윤병주(용돌이)
백양사 대웅전 부처님과 관음보살
대웅전앞에서(염상열회장 윤병주 명예회장 김왕경 초대강남구의장 지규동 체육부장전홍기 고문 서상선 총무부장 권오상 자문위원 김준열변호사
대문에 그려진 옛백양사 그림
백양사 쌍계류의 시한수
백양꽃의 유래
백양사에 있는 이팝나무
천연기념물153호 비자나무
백양사 부도원의 부도들
사명당의 부도가 있는것을 보고 놀랐다
선운사 입구에있는 풍천장어집 식당(여주인이 아주 친절항다)
미당시문학관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읍 선운리 마을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그의 사후 다음 해인 2001년 가을, 이호종 전 고창군수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개관 하였다. 미당의 유품 5천여 점을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개관일은 11월 3일인데 이는 미당의 중앙고보 재학시절 광주학생의거
지원 시위 사건(1929년, 1930년 2회)을 기념하기 위해서 정해졌다.
미당은 이 사건 때문에 일제에 의해 강제 퇴학당하고 이후 정규 학력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우한 청년시절을 방황으로 보내면서도
뛰어난 시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여 마침내 20세기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고향의 생가와 묘역 근처에 있어서 더욱 뜻 깊은 공간이며,
폐교된 선운초등학교 봉암분교를 새롭게 단장하여 지었으므로
<친환경>과 <배움>의 건축미학을 지향하고 있다.
해마다 11월 3일 전후에는 개관기념일을 맞아 <미당문학제>를 개최합니다.
<미당문학제>는 미당시문학관과 동국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하며, 중아일보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지속적으로 후원해오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주관의 미당문학상 현지 시상식, 미당백일장, 시낭송제 및 각종
기념공연, 전국 규모의 학술회의 등이 준비됩니다.
2004년부터 마을 일대에 국화꽃을 심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10월 하순이 되면 묘역 근처에 조성된 국화꽃밭에서는 미당의 대표시
<국화 옆에서>의 그 노오란 국화꽃 수억 송이가 일제히 피기 시작합니다.
그 향기와 빛깔과 모습이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시가 함께 하는 꽃이기 때문에 이 꽃을 미당국화라고 부릅니다. 꽃은 약 한 달
이상 피어 있으며 이 기간 동안 고창 전역에서 국화축제가 벌어집니다